이 편 너무 귀여워요.
여러분은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 좋지요. 고양이가 없으면 스트레스로 죽어버려요. 저 같은 경우엔.
딱히 키우지 않아도 좋지만 같이 자면 기분이 좋으므로 추천합니다.
길고양이를 찾는 것도 좋지요. 길고양이 강하죠. 헌터입니다.
게다가 집고양이와는 다르게
「이 몸은 자유인. 그래, 빗대자면 저 하얀 구름이지.」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게 참기 힘들 정도로 귀엽네요.
사실 그렇게 자유롭지도 않은데 말이죠.
이런 착각을 하고 있는 게 꼭 절 보는 것 같네요. 푸훗.
최근에 이런 메일을 받았습니다.
「고양이를 주웠습니다. 이름 지어주세요. 가명은 야옹입니다.」
완전 프리티한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사진 올리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고양이에요. 이거, 해 드리고 말았습니다.
제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다니,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네요.
뭐, 이대로 냅두면 가명인 ‘야옹’으로 결정되겠지.
그러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어 버리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가 된 마음으로 고심 해 봤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엔젤, 잘 부탁해. 창가의 자그마한 새와 키스(입맞춤)하며.
달걀이
이거, 꽤 괜찮죠.
처음 뵙겠습니다. 달걀이. 안녕하세요. 달걀이.
건강하게 키워줘요. 달걀이.
음... ‘팥’도 괜찮은 것 같은데...
뭐라 하더라도 맛있을 것 같은 이름이 최고에요.
제 친구네 고양이 이름은 「해초」인데, 진짜로 「해초」같은 표정
짓고 있어요.
작명이란 정말 중요한 일이죠오.
저도 이름이
「금강석 이시키요미즈노스케」
같은 거였다면 분명히 음악 안 했을테죠.
「다이아몬드 키요미즈」
라는 이름으로 파계승이 되었을지도. 끼예에에에!
그런데 요즘 곧잘 태클이 들어온다.
「두근두근☆ 이거 아티스트 대담이랑 겹치지 않아?」
라는 메일에 두근두근☆하면서 (두그---은☆)
이번 주는 고양이 얘기라도 할까. 우리 집 고양이 얘기. 음악 얘기 따위 하지도 못하겠네요! 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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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그것은 이젠, 어딜 보더라도 확연한 고양이다.
손바닥만 할 때부터 키웠기 때문에
그것 나름대로 내 자식인 것 마냥 귀여운 것이다.
어리광을 잘 부려서 좀 포동포동해 진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 나름대로 뽀동뽀동같은 느낌이라 어딘가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시리라 생각하지만
고양이의 주인은 고양이를 밖에 내보내느냐 아니냐로 나뉜다.
무슨 소리냐 하면,
「자유롭게 밖에 내보내주지」인지 「주인 감시 하에서만
밖에 나갈 수 있다」인지로 나뉘는 것이다.
집고양이에게 있어 어느 쪽이 더 행복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옛날부터 고양이가 자유롭게 나갔다 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하여 전사, 아니 헌터로써의 기술을 연마시키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사냥을 하지 못하는 새끼 고양이는 필요 있지 아니한 것이다.
옛날에 본가에서 키웠던 고양이가 훌륭한 전사였기 때문에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던 것일지도 모르오. 뭐야 이 문체.
그의 이름은
「미」
라 하였다. 「미」이로다. 「미」이다.
원래는 「사사미」라는 이름이었지만 어느 샌가
「미」가 되었다. 이름을 너무 줄인 것이다.
그는 엄청난 난봉꾼이었기에
한 쪽 귀도 없고, 몸에는 물린 자국, 상채기, 애는 잔뜩 만들어오고.
일부다처제 도입이라도 해낸 것 같은 토벌대 장군 같은 놈이지만 집에 돌아오면
「뿌냥?」
이라는 초절정 프리티한 목소리로 우는 것이다.
밖에서 싸움이나 진창 하고 있을 때엔
「흐갸아아아! 구ㅜ르밬코오휜흐눈!」
이딴 식으로 우는데 집에 돌아오면
「뿌냥?」
하고 우는 것이다.
위험한 남자일수록 사실은 어리광쟁이인 것이다.
아마, 모성을 자극하는 타입이겠지. 기둥서방 같은 놈. 제길.
이런 장군님 「미」지만, 역시 세월 앞에선 장사 없다고
한 번 싸움에서 진 후, 조용히 숨을 거둔 것이다.
고양이 주제에 13년 이상이나 살았으니 호상이라 할 수 있겠다.
생애 한 줌의 후회도 없이 평안히 잠든 그의 사인은 당뇨병이었다.
라고는 해도 그런 용사의 삶을 초등학생 때부터 봐 온 나로서는
「주니어」도 그런 난봉꾼으로 자라길 바랐다. 아버지의 시체를 넘어가라! 라는 식이었다.
그렇기에 일단 외출은 시켜주었지만 사냥과 관련해선 어째서인지 이 녀석은 글러먹은 아이.
너 진짜 고양이야? 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글러먹은 아이. 사마귀를 보면 우물쭈물할 정도로 글러먹은 아이.
코타츠에서 몸 반 쯤 내놓고 자고 있을 정도로 글러먹은 아이. 역시 2세라 하여도 아버지와는 다른건가...
하지만 글러먹은 만큼 귀엽다. 그래서
건강히, 건강히 그리고 포동포동하게 키웠습니다.
그런 ‘본’님이었지만 최근에 본이 사냥감을 물어왔다.
베짱이라든가 사마귀 같은 거면 괜찮다. 작은 새나 쥐 같은 거더라도 어쩔 수 없던 거라고 쳤을텐데
하필 그것이었다. 그것. 현대의 암흑기사.
바퀴벌레군.
「어때?」
라고 말하자마자 베란다 슬리퍼 위에 암흑전사의 시체 3구가 가로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평소처럼 계속
슬리퍼를 신었다.
혼자서 펑펑 울었다.
부모가 어느 방면에서 훌륭하다 하여도 그 아이도 같은 방면에서 훌륭할 것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유전자를 물려받아도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피를 물려받았다는 것은 부모자식의 유대이지, 성격이나 재능이 유전되는 건 일단 아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어디까지나 내 지론이다. 나는 나이다.
「부모가 부모라면 아이도 아이」「개구리의 새끼는 개구리」라는 한 마디도 해본다. 부부~
일단 고양이의 자유 심리를 계속 보고 배우며,
힘내라 2세.
오늘의 한 마디.
결국 좋아하는 걸 하면 그걸로
장땡 (글자 별로다)